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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인들의 시와 동양화 (★)▶[검]

潤盛 2020. 10. 30. 17:28


김홍도의그림 (호암미술관 소장)



옛 선인들의 시와 동양화

탄노가 (嘆老歌)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 (1263~1343) 호는 역동,
고려 충숙왕 때의 학자


하여가 (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려보세

이방원(1371~1422)
조선 제3대 임금

태종이 아직 임금이
되기 전 정몽주가 이성계의
병문안을 왔을 때
정적 정몽주의 의향을 떠 보며
회유를 하려는
'하여가' 노래다.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포은 정몽주 (1337~1392)
고려 공민왕 때

벼슬은 문하시중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정몽주의 응답의 노래이다.


백설이 자 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 이색 (1328~1396)
고려말의 대유학자

공민왕 때 문하시중 우국충정을
담은 노래로 여기서 세 가지는

'구름: 이성계의 신흥세력
'매화: 우국지사
'석양: 고려 왕조를 의미.




삼은(三隱)?

고려 시대의 선비들은
아호에 '은'(隱) 자를 많이 썼는데
이는 망한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키며 숨어서
은거(隱居)한다는 뜻으로
포은(圃隱) 정몽주,
목은(牧隱) 이색,
야은(冶隱) 길재 등
세 사람을 말한다.

회고가(懷古歌)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았더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 길재 (1353~1419)
고려말 공민왕 때의 학자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으나
고사하고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이를 '회고가'라고 한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새 오나니


창파에
조히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이 씨 (정몽주의 어머니)
'새 오나니: 시기하나니
'조히: 깨끗이
아들에 대한 훈계의 노래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태종조 때의 영의정 이직,
호는 형제,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비평하지 말 것이며
겉모양은 훌륭하여도
마음이 검은 사람도 많다는
경계의 노래다.


강호에
봄이 드니 이 몸이 일 이하다
나는 그물 깁고
아희는 밭을 가니
뒤 뫼에 엄 긴 약초를 언제
캐려 하나니

황희(1363~1452)
호는 방촌, 공민왕~문종
때의 영의정

이 노래는 정계를 은퇴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전원생활을 하며 평화롭고
아름 다운 농촌의
봄 풍경을 읊은 노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세월이 하 수상하니 올 동
말 동 하여라

김상헌 (1570~1652)
인조 때의 정치가

병자호란 때 끝까지 싸울 것을
주창한 척화 신으로
선양에 인질로 가며 읊은
우국충정의 노래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칠 아이는 여태 이러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하나니

남구만 (1629~1711)
효종 때 등제하여
영의정 역임,

낙향하여 전원생활을 하며
농촌의 평화로움을
그린 노래.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 하야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 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윤선도 (1587~1671)
호는 고산, 효종의 스승
이기도 함.

오우가(五友歌) 중에 일생을
유배지에서 보내다시피 한
불운한 학자요 정치가였다.
인생무상을 읊었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고
내 집에 술 익거든 나도
자네 청하옵세
백 년 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김육 (1580~1658)
호는 잠곡, 영의정을 역임

술도 술이려니와
우정을 잘 표현.


술을 취하게 먹고 둥글게
앉았으니 억만
시름이 가노라 하직한다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정태화 (1602~1673)
호는 양파, 영의정을 지냄,

낙향하여 벗들과 더불어
술 마시는 심경을
노래로 표현.


붕우가(朋友歌)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라도 지척이요
마음이 천리 오면
지척이라도 천리로다
우리는 각
천리오나
지척인가 하노라

(작자미상)
여기 각재의 '재'는 있을 '在'자,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처세가(處世歌)

들은 말
즉시 잊고 본 일도 못 본 듯이
내 인사 이러하매
남의 시비 모르로다
다만 손이
성하니 잔 잡기만 하노라

송인 (1517~1854)
중종~선조 중종의 부마

일일이 참견하지 말고
듣고도 못 들은 체
보고도
못 본체 하는 처세술을 노래.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 절로 물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여라.

김인후 (1510~1560)
호는 하서,
중종~명종 학자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내어 님 계신 데 보내고자
님이 보신 후에야 녹아진들
어떠리

정철 (1536~1593)
호는 송강,
사랑하는 님에게
흰 눈과 같은 자신의 맑은
마음을 알리려는
연군의 정을 노래.


탄로가(嘆老歌)

뉘라서 날 늙다 하던고
늙은이도 이러한가
꽃 보면 반갑고 잔 잡으면
웃음 난다

추풍에 흩날리는 백발이야 낸들 어이하리오

김정구 (연산군 때 사람)
이 노래에서의 꽃은
여자를 의미.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 거야
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 듯이 있거라

윤두서(1668~?)
호는 공제, 유선도의 증손
겸허한 처 세관으로
현인은 아무리
초야에 묻혀 있어도 자연히
알려지게 된다는.


오륜가(五倫歌)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 옷 아니시면
내 몸이 없으렷다
이 덕을 갚으려니
하늘 끝이 없으리

주세붕의 오륜가 (1495~1570)
백운동 서당을 창건하며
서원의 창시자




청산리 벽계수야
수 이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
(본명은 진, 기명은 명월)
중종 때의 송도 명기,
시 서화 음률에 뛰어남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쏘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황진이
(스승의 죽음을 노래함)
= 옮긴 글 =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소주 한잔) 나누시는
餘裕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