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끄러운 놈이
떠나면 한결 조용하겠지
- 나 떠나는 날엔 -이 시영

대구 정신의학과 전문의
조선일보 18.8.24
어떻게 떠나야
할까를
가끔 생각하게 된다.
내 결론은
크게 흔들림이 없다.
바라기로는,
먼저
어느 낯선 곳에
강연을 간다.
언제나 그러하듯
영혼을 토해내 강의한다.
끝나고 나면
숨을 크게 못 쉴 때도 있고
갈비뼈가 아파
만질 수도 없다.
그럴 땐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고 싶지 않다.
그럴 힘도,
기력도
물론 남아 있지 않다.
돌아오는 길엔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러 들기도 한다.

마지막 날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느 낯선 곳에
강연을 마치고
터덜터덜 숙소로 가는 길에
그만 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렇게 될 것 같다.
그게
가장 나다운
최후일 듯싶다.

장례식은 없다.
바쁜 사람 불러 모아
귀찮게 할 생각 없다.
가장 가까운 의대에
모든 걸 기증했으니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된다.
몸을 너무 오래 써서
닳아 버린 게 많아
나누어 줄 게 있을지가
걱정이다.
그리고
몸은 의대 학생 해부
실습용으로 간다.
해부가 끝나면
한데 모아
해부제(解剖祭)를
지낸다.
유골 한 줌
얻어 와 고향 마을,
선산, 그리고 내
혼을 피워낸 선마을과
세로토닌 문화원
한구석에 뿌려졌으면
영광이겠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내 마지막
장을 써놓고 나니
우리 아이들이
그러면 너무
서운해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면 작은 목관에
내 이름을 써서
선산 내 자리에
꽂아라.
짐승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작은 걸로 해라.
그리고 너희가
세상을 뜰 즈음에
비목도 썩어 흙으로
돌아가게 해라.

이만큼
살아온 것만으로
고맙다.
살아온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베푼 은혜가
나를 살려왔다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80대를
맞은 나에게 누군가
인생훈(人生訓)을 물었을 때,
난 서슴없이
'사은(謝恩)'이라고
대답했다.
이제 남은 세월
그간 입은 은혜에
감사하며 살겠다.
빚을 진 만큼 갚고
가야 할 텐데
아무래도
다 갚고 떠날 것 같지 않다.
입은 은혜가 너무 커서.

길에서
팍 쓰러진 사람이
무슨 말이 있겠나.
하지만 난
떠날 날이 가까이 오면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고 외치겠다.
잘 들리진
않겠지만, 그리고
마지막 날엔
'나그네 설움'을
부르리라.
그럴 힘이 남아
있다면.
시끄러운 놈이
떠나니 이제 세상이
한결 조용해지길
기원하며.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소주 한잔) 나누시는
餘裕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