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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隔世之感) (★)▶[검]

潤盛 2021. 10. 4. 08:41



Music:사나이 눈물

격세지감(隔世之感)

격세지감(隔世之感)은,
그리 오래지 않은 동안
풍속이나 풍습이 아주 많이
바뀌어서 딴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광복 후 73년,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우리는 대장간에서.

반도체, 자동차, 가전,
잠수함과 비행기를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21년 상반기 기준
이미
3000억 불(340조 원) 넘게
수출하고 있다.

? 1. 돈.



대장간 시절의
돈 단위와
지금의 돈 단위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

두 세대 전 돈의 단위는
지금 기준으로는
애들 과자 사 먹는 액수다.

억대 단위의 돈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사람들 입에서
말해지지도 않았다.

돈은
항상 부족했고
이웃끼리 급 한돈은
꿔주고 갚는 일이
다반사였다.

모두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큰돈은
가진 사람도 없었고
개인들이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는 일도 없었다.

서민들은 한평생 은행에
가 본 일 없이 살았고
큰 빚을 지는 일도 없었다.

지금은 개인도 수억,
수십억을 가지는
세상이 됐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 2. 직업.



지금은
대표적인 직업만도
15.000가지가
넘고 있다.

그러나
두 세대 전만 해도
서울법대를
졸업한 친구가
고시를 보지 않고
취직한다면
상업은행이 최고였다.

직종도 많지 않았고
대졸자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의 문은 넓었다.

지금과 같은
대기업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대개는 자그마한
자영업을 했고
학교 교사는 촉망받는
직업이기도 했다.

공무원도 좋은
직업이었고
판, 검사가 되는 것도
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지금과 같은
취업전쟁이나 알바는
거의 없는 소박한
시대였다.

대신,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게
살았다.

? 3. 택배.



지금은
택배가 거대한 사업이지만
그때는 택배가 없었다.

대신 음식 배달은
있었다.

유명한
냉면집의 배달원들은
큰 목판에 냉면 10그릇
이상을 싣고
한쪽 어깨에 얹은 채
자전거를 타고
배달했었다.

정말
묘기에 가까운 재간이라
큰 구경거리였다.
물론 그 집의 냉면 맛은
최고였다.

? 4. 인명,



인명(人命)은
사람의 목숨이다.

지금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같은 세상이다.

그러나 그때는 달랐다.

사고로 사람이 죽거나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그 현장엔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 목숨이 제값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가마니에 덮인
시신을 바라보는 눈길은
모두가 한결같이
안타까운 것이었다.

시신은
이상하게 작아 보였고
가마니 옆으로
삐져나온 사지는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 5. 날씨.



이번 여름을 겪으면서
지구의 기후가
확실히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장마에는 장대비가
내렸고,

겨울에는 삼한사온이
뚜렷했었다.

특히 겨울 추위는
정말 대단했으며
눈도 엄청 많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안에 떠다 놓은
자리끼가 얼 정도였으니
짐작이 갈 것이다.

북쪽 지방은 초겨울에
눈이 오기 시작하면
계속 쌓이고 녹지 않아

봄이면
골목이 눈 녹은 물로
작은 내가 되었다.
모두가 장화를 신고
다녔다.

? 6. 부정선거.



근자에는 선거부정도
IT기술을 쓰지만

옛날에는
고무신, 돈봉투가 오갔고
섬 지방에서 오는
투표함은 통째로
바뀌기도 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소달구지
행열도 있었고

심지어는
말도 동원되어
우의, 마의라는
유행어도 있었다.

모든 선거의
투, 개표 행위에는 부정이
있을 수 있다.
그 방법이 변할 뿐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 7. 아파트.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아파트가
지어진 것은

1932년
일본인이 세운
서울 충정로의 5층
유림아파트였으며

광복 후에는
1961년 대한 주택공사가
마포에 도화 아파트를 건설,
아파트 시대가 열렸다.

그 이전까지
이 땅에는 아파트가
없었으며
모두가 단칸 셋방에서
사는 게 보통이었다.

지금은
2.500만여 가구 중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1003만여 채의
아파트가 있으며

전세게에서
아파트가 가장
많은 나라 이기도 하다.

그러나 길게 보면
아파트가 결국은 슬럼화
되는 것이 분명하다.

다시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렸해지는 게 그 증거다.

요지음은 단독주택도
아파트 이상으로 설계,
건축되고 있다.

? 8. 다방.



지금의
카페 기능을 전에는
다방이 담당했다.

일단 들어가 앉으면
레지(젊은 여 종업원)가
엽차를 가지고 와서
주문을 받았다.

대부분이
커피를 마셨지만
여러 가지 국산차도
준비돼 있었다.

차 한잔 앞에 놓고
몇 시간을 대화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때 셀러리맨들은
출근길에 다방에 들려
모닝커피를 마셨고

점심식사 후에도 거의
다방에서 차를 마셨다.

그때
서울에서 유명한 다방이
3 1 빌딩 지하의
약속다방이었는데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사람을 만날 때 가장 찾기
좋은 장소였다.

? 9. 택시.



내가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인천에는
포드의 검은색 T형
모델의 택시가 있었다.

운전석에는 정모를 쓴
기사가 앉아있었고
조수석에는 한복에
쪽진 머리를 한
여인(차주)이 앉아
있었다.

손님이 택시를 타면
목적지까지 간 후
요금은 그 여인이 직접
받았다.

그 택시는 서민들은
탈 일이 없었지만
도시의 명물로 큰 구경
거리였다.

? 10. 수세식 화장실.



수세식 화장실은
아파트와
동시에 생긴 놀라운
시설이다.

그전까지는
모든 집에
변소가 있었는데

집안에 있는 경우와
마당 끝에 따로 짓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밤에만 사용하는
요강이 필요했다.

대소변을 큰 통에
받아두었다 통이 차면
소가 끄는 대형 통에
지게로 퍼 담아갔다.

한집이 변소를 치면
일주일 동안 온 동네가
인분 냄새로 진동했다.

그때는
두루마리 화장지라는
개념도 없었으며
신문지를 사용했고
그만큼 치질이
많았다.

지금 우리의 생활수준은
서구 선진국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으며
어떤 부분은 앞서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소프트웨어,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여기에 걸맞게
발전해야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대개는
한세대 정도가 지나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진
선진문화가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행복을 좌우하는
절반의 열쇠는
우리 자신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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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격세지감(隔世之感) ◆
작성자 유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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