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의 은혜(怨讐의 恩惠)
스페인에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지역(地域)의 주민들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怨讐)처럼 지낸다.
바르셀로나는
1492년 스페인 통일 후,
마드리드 정권으로부터
엄청난 압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언어(言語)도
자기들만의
언어를 고수(固守)하고,
지금(只今)도
분리(分離) 독립(獨立)을
꾸준히 주장해오고 있다.
그런데
동시대에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테너 가수 두 명이
바르셀 로나와
마드리드에서 한 명씩
나온 것이다.
마드리드 출신의
플라시도 도밍고와
바르셀로나의
호세 카레라스,
두 사람은 라이벌인 데다가
배타적(排他的)인
지역 정서(情緖)가 있으니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결국(結局)
두 사람은 상대방이
나오는 무대(舞臺)에는
절대 서지 않겠다고
선언(宣言)하기에 이른다.
1987년,
카레라스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그는 플라시도 도밍고 보다
훨씬 더 상대하기 힘든
강적(强敵)을 만났다.
불행(不幸) 히도
백혈병(白血病)에 걸린 것이다.
생존확률은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백혈병과의 투쟁은
심신을 고갈(枯渴)시켰고,
더 이상의 활동(活動)이
불가능했다.
그동안 상당한
재산을 모아 놓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해야 하는
치료를 위해서
스페인에서
미국의 시애틀을
왔다 갔다 하니
비용(費用)이 많이 들었다.
결국 그의
경제(經濟) 형편은 극도로
열악(劣惡)해 졌다.
골수이식이며
치료에 많은 재산을
다 쏟아부었건만
쉽게 병에서
회복(回復)되지 못했다.
그즈음,
그는 마드리드에
헤르모사 재단"이라는
자선단체(慈善團體)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헤르모사 재단"은
백혈병 환자를 돕는
단체였다.
그는
신청서(申請書)를 보냈고,
"헤르모사 재단"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건강(健康)을 되찾았다.
그는 질병(疾病)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뒤,
테너 가수로서 활동을
재개(再開) 했다.
호세 카레라스는
다시 세계적인
테너 가수에 걸맞은
많은 수입을 벌어
들였다.
그는
"헤르모사 재단"에
기부금(寄附金)을 보내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했다.
재단의
정관을 읽어 보던
그는 놀랍게도 재단의
설립자이자 이사장(理事長)이
다름 아닌
플라시도 도밍고라는
것을 발견(發見)했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병든 카레라스를
돕기 위해,
그 재단을 설립(設立)했다는
사실(事實)까지 알게 되었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카레라스가
경쟁자(競爭者)의
도움을 받는다는
수치심(羞恥心)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줄곧 익명(匿名)을
고수(固守)했던 것이다.
크게 감동을 받은
카레라스는 어느 날
마드리드에서 열린
플라시도 도밍고의
공연장(公演場)을 찾아
그를 놀라게 했다.
카레라스는
공연 도중 무대로 올라가서
도밍고의 발 앞에
겸손(謙遜) 히
무릎을 꿇고
공개적(公開的)으로
감사(感謝)의 말을 건넨 뒤에
용서(容恕)를 구했다.
도밍고는
그를 일으켜 세우며
힘껏 끌어안았다.
위대(偉大)한 우정(友情)이
싹트는 순간(瞬間)이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따뜻한 배려(配慮)가
음악가의 세계에서
라이벌을
이렇게 배려하고
자신의 물질(物質)까지도
내어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릎 꿇은
카레라스 보다
더 커 보이는
이유(理由)입니다.
폴 J 마이어 저서
'용서의 심리학' 중에서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소주 한잔) 나누시는
餘裕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