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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불효교(孝不孝橋) (★)▶[검]

潤盛 2020. 5. 20. 17:02




효불효교(孝不孝橋)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어린 나이에 시집왔더니...
초가삼간에
화전 밭 몇 마지기가
전 재산이다.

정신없이 시집살이
하는 중에도 아이는 가졌다.

부엌일에 농사일하랴
길쌈 삼으랴,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돼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지 비몽사몽간에
일을 치른 모양이다.



아들 둘 낳고,
시부모 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 잡았을 때

시름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덜컥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유복자
막내아들을 낳고
유 씨 댁이 살아가기는
더 바빠졌다.

혼자서 아들 셋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느질로

십여 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셋이 쑥쑥
자랐다.



열여섯 큰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
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시원하게 해치우고,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다.

세 아들이 효자라,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게 했다.



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 씨 댁은 몇 달 만에
새 사람이 됐다.

새까맣던 얼굴이
박꽃처럼 훤해지고
나무뿌리 같던
손이 비단결처럼
고와졌다.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이다.
베개를 부둥켜안아 봐도,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 씨 댁은 바람이 났다.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사냥꾼과 눈이 맞았다.



농익은
30대 후반 유 씨 댁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의 깊은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삼 형제가 잠이 들면
유 씨 댁은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다.

어느 날 사경 녘에
온몸이 물에 젖은 유 씨 댁이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왔다.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이다.

세 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 오고
쇠 다리뼈를 사다
고아줬다.



며칠 후
유 씨 댁은 발의,
부기가 빠지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또다시

아들 셋이,...
잠든 후 집을 빠져나와
범골로 향했다.

유 씨 댁은 깜짝
놀랐다.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세 아들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효불효교
(孝不孝橋)라 불렀다.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리 4
(경상북도 사적 제 457호 지정)

이다.

일명 칠성교로
불리기도 한다.
요즈음 자식들은....
우리들에게 무슨 다리를
놓아주려는지?

? 인터넷으로 받은 글 ?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소주 한잔) 나누시는
餘裕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