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 법사스님 감동 이야기... 조선의 정조대왕 시절에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훌륭한 법사 스님이 계셨다. 그 법사 스님은 아주 핏덩이 일 때 그 추운 겨울에 양산 통도사의 일주문 앞에 보에 쌓여 놓여 있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스님 한 분이 통도사로 데리고 와 절에서 기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통도사 일주문 앞에 놓이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 어느 날 젊은 부인이 한 사람 찾아와 주지 스님을 친견하였는데 그때 갓난아이를 보듬고 왔었다. 그 젊은 보살이 주지 스님에게 말 하기를.. "스님 제가 이 절에서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공양주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엄동설한에 우리 모자는 굶어 죽지 않으면 눈 속에 얼어 죽을 것 같으니 해동을 할 때 까지 만이라도 제가 여기서 일을 하면서 이 갓난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때 주지 스님은 대중 공사 (사찰에서 말하는 일종의 재판 같은 회의를 말함)를 모든 대중이 모인 데서 붙였다. 그때의 결론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사부 대중이 많은 이 사찰에 살면서 헛소문 만들기 좋아하는 자들로 인하여 어떤 불미스러운 헛소문이 날지를 모른다. 젊은 스님 누군가와 눈이 맞아 애를 놓았다느니 아니면 젊다 보니 앞으로 있을 어떤 스님과의 연분이 생길 수 도 있기 때문에 이 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 보살은 통도사를 빠져나오다가 눈이 오는데 어린 갓난아이를 일주문 옆에 두고서 떠나 버린 것이었다. 그것을 다른 스님이 지나다 데리고 와서 키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크면서 얼마나 신통한지 스님들이 법문을 하실라 치면 늘 앞에 정좌하고 앉아서 요지부동도 않은 체 듣는 즉시 외워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나이 18 세에 훌륭한 법사 스님이 되셨다. 그 스님이 법문을 하실 때면 사방 천지에서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날도 그 법사 스님이 법문을 하고 계실 때 법문을 듣고 있던 어떤 노 보살님이 혼자 말로.. "대체 저 법사 스님의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 어떤 분이 어머니 이시길래 아들을 저리도 훌륭하게 잘 키우셨을까?" 그렇게 혼자 말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때 옆에 앉아 있던 한 보살이 "예~ 제가 저 법사 스님의 어미입니다." 그 단 한 마디가 순식간에 법당 안과 도량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쫙 퍼진 것이었다. 마침내는 법사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는 그 사이에 듣게 되었다. 법문을 마치고 나온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라는 사람 보고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모든 사부대중을 불러 놓고 의논을 하였다. "지금 저기에는 내 어머니라는 보살이 와 있(계)는 데 모든 스님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제가 만나 뵈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모두가 하나 같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아니 그 엄동설한에 눈까지 오는데 죽으라고 일주문 앞에 두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훌륭한 법사 스님이 되시니까 내 아들이네 하고 자랑을 하는 것이 어디 어미 된 도리입니까? 그런 사람이라면 불러서 혼을 내주 고 두 번 다시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중공사가 그렇게 결정이 나자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 되는 사람을 들어오게 하여서 마주 앉아서 하는 말.. "정말 그대가 내 어머니가 맞소?" "예~ 제가 예전에 일주문에다 두고 갔었지요." 그러자 법사 스님 "됐소.. 그러면.. 이제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들이라고도 하지 말고 또 그대가 법사 스님의 엄니이네. 하는 말도 마시오. 죽으라고 버리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내 아들이네~ 하는 것은 무슨 심보요. 그러니 앞으로는 내 법문을 들으러 오는 것은 좋으나 절대로 어디 가서 법사 스님이 내 아들이란 소리는 마시고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는 채도 마시구려.. 그러면서 어머니를 돌려보냈던 겁니다. 그 무렵 정조 대왕의 귀에도 양산의 통도사에는 아주 훌륭한 법사 스님이 있는데 그 스님이 법문을 할 때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는 소문이 들린 것이다. 그 소문을 듣고 있던 정조 대왕이 그럼 그토록 훌륭한 법사스님을 낳으신 어머니가 있을 테니 양산으로 내려가서 그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하시요. 어명을 받고 양산 통도사로 내려온 신하들이 다시 정조대왕에게 이르기를.. 그 어머니에 대한 자초 지종을 모두 고하자 정조대왕이 통도사의 법사 스님에게 편지 한 통을 전했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을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여도 그 어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님만큼이나 하리오. 내가 듣기로는 그 추운 겨울에 스님을 버렸다 하나 그것은 그렇지가 않구려. 둘이 같이 다니면 얼어 죽고 배 고파 죽게 생겼으니 파리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는 스님들은 자식을 여기 두고 가도 분명 살려 주었으면 주었지 어찌 산 생명을 죽도록 내 버려두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살리려고 두고 간 것이지 절대로 죽으라고 버리고 간 것이 아닙니다. 이 편지를 받아 든 법사 스님.. 갑자기 오늘이 아니면 그 어머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수소문하여서 길을 떠나 찾아다니기 시작을 했었다. 그러다 해가 거의 다 질 무렵, 한 마을에 이르러 한채뿐인 집에 들어가서 묻기를.. 혹시 이러이러한 노 보살이 이 부근에 사시는 거 모르시오? 그러자 그 집의 노인이 나와서 언덕 밑의 집 한 체를 가리키며.. 저기 저 집인데 오늘은 불이 켜 있지가 않군요. 불이 켜 있으면 그 노인네가 살아있거나 집에 있는 것이고 불이 꺼졌다면 약방에 갔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요.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는 호롱불을 하나 빌려 숨이 목에 차도록 뛰어갔다. 그리고 그 집안에 당도하니 인기척이 없어 법사 스님이 주인을 불러 본다. 주인장 계시요? 주인장 계시요? 아무 대답이 없자 법사스님이 토방을 올라 방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 분명 누군가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법사 스님이 호롱 불을 들고 다가가서 이불을 젖히니 어머니가 거의 죽어 가는 모습으로 누워 있는데.. 머리맡에는 언제 먹었던 죽 그릇 인지는 몰라도 바싹 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었고 방안은 냉기가 흐르고 입에서는 입김이 솟아 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법사 스님이 어머니 ~~ 그러자 가물가물 죽어 가던 어머니가 희미한 정신으로 "뉘시오?... 뉘시길래.. 나 보고 어머니라 하시오.. 그 호롱 불로... 얼굴 좀 비쳐 보구려.." 그때 법사 스님이 호롱 불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갖다 대자 어머니가 하시는 말.. "이제... 되었어... 어서... 양산 통도사로 빨리 가시어 더 많은 법문으로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디 훌륭한 스님이 되시구려. 이제 나는 내 마지막 소원을 들었구려~ 어머니라는 그 말 한마디 못 듣고 죽을 줄 알었었는데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어머니를 둘러업고는 양산 통도사로 뛰기 시작했었다. 통도사에 도착한 법사 스님이 있는 정성 다 들여 미음을 쑤고 약을 다리어 그 어머니를 살렸고 그렇게 지내던 어머니가 양산 통도사에 온 지 3년이 되는 해에 세상을 뜨셨다. 그때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를 위하여 49제를 드리는데 법문을 한 곡조 올린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귀한 부자 인가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궁한 가난 인가 부모님이 살았을 때 가장 귀한 부자이고 부모님이 안 계시니 가장 궁한 가난 일세 어머님이 살았을 땐 밝은 낮과 같더니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해가 저문 밤과 같네 어머님이 살았을 땐 마음 든든하더니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온 세상이 텅 비었네 그렇게 49제 마지막 제에서 법문을 하자 그의 어머니 음성이 다시 법당 안을 맴돈다. 훌륭하신 법사 스님 자랑스러운 내 아드님 어머니란 그 한마디 다 못 듣고 갈까 봐서 조마조마하더니만 그 소원 이제 풀고 오늘 내가 떠나가니 너무 성념 마시구려. 자랑스러운 내 아드님 훌륭하신 법사 스님 자식 옆에 두고 살며 어미 소리 못 들을 때 메어지는 그 가슴은 수만 개의 송곳 끝과 같고 그 어머니 소리 듣고 귀를 번쩍 떴을 때는 세상을 다시 얻었는데 이제 내가 가는 길에 훌륭하신 법사 스님 그 법문에 감사하니 부디부디 좋은 법문 많이 하여 세상을 환히 밝히소서.. 이제 나는 올라갑니다. ~ 감동 글 카톡에서 ~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소주 한잔) 나누시는 여유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 |